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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발적 사랑—관계의 가장 애매한 선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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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T GIANT 작성일19년05월20일 16:02 조회83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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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발적 사랑관계의 가장 애매한 선상에서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

    만약에 내가 죽으면 내 장례식에 올 거야?” “아니, 그렇게는 못할 거 같은데. 그건 너무 슬픈 일이잖아.”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핵심(core)이 없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예의를 지키기 위한 사이에서 필요로 하는 돌려 말하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겠다는 상투적인 표현처럼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모른다는 말은 너무나도 클리셰적이지만 회피를 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적당한 단어이다. 우리 둘 다 핵심을 짚어냄으로써 서로가 지게 될 책임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너와 나의 비겁한 관계유지방식이었다.

    조금 귀엽게 표현하자면 밀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유희가 이렇게 비열한 방식으로 진행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둘 중 하나라도 건드려버리면 우수수 터져버릴 진실들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누구도 확실한 책임을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자는 만약의 경우 마주하게 될 잔혹한 현실이 두려웠기 때문에.

    나 또한 가끔 그에게 묻고는 하였다. 내가 만약에 결혼한다면 축하해줄 것이냐고, ‘나의결혼식에 와줄 것이냐고. 그러나 우리 둘 중 한 명이 먼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가 될 것이며, 누군가가 빠른 시일 안에 죽는다면 그것은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결혼한다면 나는 그의 결혼식에 갈 것이며 내가 죽는다면 그는 내 장례식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연락을 해오지 않은 이틀 내내 앓았다. 정신적인 쓰라림은 육체적인 고통으로 이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피로감을 느꼈고, 별거 아닌 일에도 감정이 북받쳤다. 글자 burnout. 완전히 연소된 것만 같았다. 지친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하였다. 그것의 원인이 그가 나에게 보여준 감정의 깊이, 그 얄팍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애정들은 모두 거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냐고 당장이라도 따져 묻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따져 물었다면 너는 나에게 화를 냈을까? 어찌되었든 상대방을 더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나였기 때문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무 당연하게도, 어떠한 종류의 말과 행동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글을 쓰고 있어요.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무관심과 믿음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나요, 사족을 달자면 추궁이 아니에요. 두 번째 거짓말이었다. 내일 시간 될 거 같아요. 잘은 모르겠어요. 마지막 거짓말이었다. 그 또한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그의 의중이랄 것도 없는 의중이 궁금하였다. 단순히 그에게 말을 붙임으로써, 대답에 섞인 작은 애정들을 느낌으로써, 나의 생각이 착각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얻는 작은 안정감, 단순히 그런 것들이 필요하였을지도 노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를 만날 시간을 만들 것이고, 그것은 확실했다. 그는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법이 없었다. 두려울 만큼 거절을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모든 요청들을 더욱 의식적으로 승낙하였다. 단순히 그가 느낄 무안함이 두려워서라고 하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애정이 너무 컸다.

    누군가는 자주 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느낌이 좋다고 하였다. 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명령을 거절당하지 않을 권력이다. 내가 무엇을 말하여도 상대방이 수긍할 것이라는 느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여도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그에게 우위를 주었고, 그와 동시에 모든 집착을 버림으로써 당신이 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는 하였다. 후자는 나의 마지막 방어책이었다. 그것은 그를 향한 암시인 동시에 나에게 하는 세뇌였다. 비겁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애정에 대한 기대가 저버려졌을 때 내가 받을 상처는? 오롯이 나만이 감당해야 할 모든 고통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을 회피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할 자격이 없는 것인가?

    짐작할 수 있겠니. 나약함이 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걸. 간절함이 알 속의 죄를 깨어나게도 한다는 걸. 문밖에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을. 모든 일들의 시작이 자신이었음을, 그러니 자신을 제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논리적인 길임을 확신하는 순간을. 무의미로 무의미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밀봉하려는 마지막 결단을.

    한 강, 『바람이 분다, 가라』 에서.

    그의 모든 애정적인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그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보다는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그 모든 애정을 느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며, 그것은 헛된 기대를 걸지 않기 위한, 혼자 착각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방어의식이며, 상처받을 수 있는 그 모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팔을 내어 줄 수 있지만 여자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팔을 베고 잘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었다. 그의 페이스(pace)에 휘말리면 안 돼. 그와 나의 행동은 같은 의미가 아니야.

    섹스는 하나의 행동에 지나지 않고, 사랑은 또 다른 개념이다. 내가 손을 잡아달라고 하기 전까지 잡아 준 적이 없었기에, 안아달라고 말하기 전까지 먼저 안아준 적이 없었기에, 내가 먼저 방을 나설 때 절대 함께해준 적이 없었기에 그가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말이야. 손을 잡아달라거나, 입을 맞추어 달라는 것이, 욕구와는 다른 선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행동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웠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겠는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말하였다. 그가 무엇을 말하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에 빠지게 되어도 좋으니 차라리 부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들었다. 차라리 나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해주었으면 바라는 동시에 그가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런 상태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언뜻 스쳐가는 행동과 말들 속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할 뿐이었다.

    그 또한 내가 말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고 하였다. 확실한 계기가 없는데 좋아할 수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였다. 너는 가끔 행위의 끝에서 왜 정액을 삼키느냐고 물었지, 뱉어내도 상관없는데 왜 굳이 삼키느냐고. 그것은 내 나름대로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구별을 두기 위한 행동이었다. 섹스의 농도. 그가 강압적으로 구강섹스를 이끌어가도 거부하지 않거나 정액을 삼키는 것. 그 모든 것이 사랑의 증표가 되기를 바랐다. 그저 예의일 따름이라고 웃어 넘기는 것은 그가 그 사실들을 모르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예쁘다, 좋아해, 혹은 사랑해와 같은 말들이 그렇게까지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질 줄을 몰랐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모든 아름다운 형용사와 동사들이 단지 세뇌와도 같은 주문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어디에서부터 문제였을까? 우발적인 섹스가 가능한 것이냐고 물었다. 너와 내가 자게 된 것이 우발적인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너는 너와 처음 잔 날,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우발적인 섹스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이 모든 불투명한 질문들 사이에서 수렴하는 감정이 어느 쪽의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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