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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그 덧없음―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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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DIT GIANT 작성일19년03월28일 17:20 조회1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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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그 덧없음―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담이다.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 브람스에 대한 기호를 묻는 것은 모차르트에 대한 기호를 묻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이것 또한 여담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은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농담하세요?” 라고 반문한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덧붙인다. 사랑은 이 년 이상 가지 않는다. 좋게 봐주어서 삼 년으로 친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사랑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사랑은 단지 덧없음에 지나지 않는다. 덧없고, 변하기 쉽고, 불안정하다. 사랑을 향유하고 있는 인간이 그러하듯이.

    나로 하여금 덧없다라는 단어는 K에 대하여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K라는 사람의 존재를 대학에 들어온 첫 학기의 교양 수업에서 인지하게 되었다. 담당교수는 젊지 않은 시간강사였고, 시집을 낸 이력이 있었다. 과목의 정식 명칭은 영화와 문학이었지만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처음의 두 음절만을 인식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 중 제법 많은 이들은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생일이 늦어 아직 투표조차 할 수 없었던 내 입장에서 서른을 목전에 둔 그들은 학생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수는 그들에게 자네“XX학생보다는 조금쯤 깍듯하게 들리는 “XX라는 존칭을 사용하였다. K도 그런 호칭으로 불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백 명 가까이 되는 성인이 들어찬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를 돕던 그는 내가 얼굴을 인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강생들 중 하나였다.

    수업은 고루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하지만, 대학생활의 첫 학기에 듣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양식의 수업이 아니었다. 교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는 일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고, 그녀가 늘어놓는 말들의 난이도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의 교양수업에서 기대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학기 내내 미쟝센과 의식의 흐름기법 따위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결국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K는 덧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는 신입생들로만 이루어져 있던 내가 속한 조의 발표가 끝나자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그녀의 소설은 절반이 공대생으로 이루어졌던 신입생 무리에게는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국문과 대학원과정을 준비하고 있던 K의 질문은 더더욱 난해하였다. 그러나 굳이 목매지 않아도 좋은 것들에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은 나의 주특기가 아난가? 오만한 완벽주의자. 그가 물었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학번을 기어코 찾아내어 학교 포털 사이트를 통하여 쪽지를 보냈던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와 그의 지인들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오던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제외한 구성원들에게 이물질 같은 존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베푸는 친절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랬던 K는 습관처럼 말하였다. 모든 것이 너무 덧없다고, 그런데 덧없기 때문에 소중할 수도 있지 않냐고, 그렇게 따지듯이 이야기하였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겨우 문학을 좋아하는 흉내나 낼 줄 알았던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지치도록 책을 읽어왔지만 문학적 감수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나의 오랜 콤플렉스였다. 그가 입에 담았던 단어들, 그 단어들이 구성해내던 문장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가 그러한 말들을 내뱉던 맥락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 또한 그가 말한 덧없음의 일부였을까?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폴, 그녀의 바람기 많은 애인 로제, 그리고 폴을 열렬히 사모하는 스물 다섯의 청년 시몽. 헌신적인 폴과는 달리 로제는 그가 원할 때 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서 하룻밤을 보내고는 한다. 폴을 그녀의 집 앞에 내려주고, 창녀를 사서 섹스를 하며, 폴의 고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로제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로제를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마 김을 만나기 한참 전이라면 이해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나는 김에게 내가 하룻밤 창녀와 같은 존재인지, 혹은 로제와 같은 존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지 김과 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은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또한 내가 선택한 작은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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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볍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로제와 폴은 결혼한 사이가 아니다. , 로제는 그가 말하는 것처럼 자유로운 남자, 보다 구체화하면 책임에서 자유로운 남자이다. 만약 어떠한 종류의 가약이 맺어진다면 불리해지는 쪽은 로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몽의 존재를 확인한 뒤에는 폴과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헌신할 생각은 없지만, 폴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녀와의 안정적인 관계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방지하려고 한다. (그가 끌여들이는 창녀들이 가장 위협적인 대상이라는 것은 정작 모른 채로.) 로제에게 폴은 잡힌 물고기이고, 사실상 최후의 보루이다. 폴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디폴트 값이다.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다. 그는 천박한 여자들과 함께 밤을 보내면서 폴은 그녀들과는 다르다고 느끼지만, 폴은 차라리 그러한 창녀들 중의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폴에게 한눈에 반한 시몽은 그녀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폴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가면서까지 로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폴은 시몽과 함께할 때에 로제와 있을 때와는 다른 안정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시몽은 그녀에게는 로 표현할 수 있는 대명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로제이다.

    두 가지를 함께 쥐고 놓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김도 그 중에 하나이다. 이기적인 것은 김이었다. 비겁한 것도 김이었고, 우리 중에 비난 받아 마땅한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김이었다. 그러나 멍청한 것은 나였다. 그에게 나는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여자들 중에 하나이었을 수도 있고, 그가 원할 때 언제든 볼 수 있지만 그가 나름의 차별을 두고 있는 존재인 폴일 수도 있다. 둘 중의 어느 역할도 반갑지 않았다.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관계들이 부질없어졌다. 김을 사랑했지만 그와는 결코 정상적인 종류의 연애를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김과의 관계에서 내린 판단 중 유일하게 현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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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끔찍한 쾌감을 경험했다. 불가피함에는 응분의 결과가 따르리라. “어째서 당신은 나보다 로제를 더 좋아하는 거지? 그 무심한 사내의 무엇이 내가 당신에게 매일 바치는 이 열렬한 사랑보다 낫다는 거지?”같은, 언젠가 시몽이 그녀에게 던질 질문들, 고통 당하는 입장에서 응당 제기할 만한 질문들이 그녀를 괴롭혔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에서.

    이야기는 폴이 로제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폴은, 그녀가 없는 동안 불행했다고 이야기 하는 로제의 앞에서 그녀 자신 또한 불행했노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 두 마디를 내뱉으면서 시몽에게 고작 미안함을 느낀다. 로제는 다시 폴을 내버려 둘 것이고, 그 둘은 헤어지거나 헤어지지 않거나, 어쩌면 다시 헤어진 후에 또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고, 충분히 현실적이나 매우 불행하고 덧없을 뿐이다.  

    마지막 여담이다. K는 나를 사랑한다고, 혹은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내가 김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순진함을 경멸하였다. 이 모든 것은 K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못하였다. K는 얼마 전, 그가 찍어준 내가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예쁜 사진이었다. K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덧없는 것이고, 사랑에 이유가 없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동등하게 허무한 것이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폴이 로제에게 돌아가고, 그는 다시 여자를 찾고, 그녀가 영원한 고독형 속에서 살게 된다고 하여도 그것은 사랑이라는 너무 쉬운 단어 아래에서는 타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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